인테리어 디자이너
저는 올해로 21년차 현직 인테리어 디자이너 입니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약 15년정도 직장생활을 했고 6년전부터 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주로 병원, 오피스, 리조트 등 상업공간 전문으로 설계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기획설계, 또는 실시설계 및 현장지원 등 설계 전반에 걸쳐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된 계기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종이가 있으면 아무 곳에나 그림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커서 화가가 될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때 공업 시간에 도면을 그리는 과제에 무척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후로 만들거나 그리는 것에 많은 관심이 생겼고 재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서 공업디자인과에 응시했는데 입시에 실패한 후, 후기대 점수에 맞춘 실내디자인과에 응시해 원치 않았던 진로인 인테리어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공수업인 제도 시간에 도면을 그리면서 설계 업무가 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4년은 어땠나요?
정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하고 열심히 과제만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도면을 캐드로 작업하고 스케치업으로 3D작업을 하지만 그 당시엔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매일 제도판에 앉아서 트레이싱에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드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새벽3~4시 전에 잠든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손가락엔 굳은살이 생기고 손 날은 시커매져서 다녔을 정도로 과제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지식도 많이 배웠겠지만 엄청난 과제를 하면서 이겨냈던 과정이 나중에 회사에서 야근과 철야의 살인적인 일정을 이겨낼 수 있는 내공을 길러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첫 직장은 어땠나요?
당시 도급순위 1위였던 P인테리어 그룹의 설계 전문 A디자인 이었습니다. 4개의 설계팀에 약 20명 규모의 회사였는데 1996년 당시엔 인테리어 설계 전문회사가 거의 없었기에, 전 직원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설계전문회사로 업계를 선도하는 업체였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야근과 철야근무를 워낙 많이 해서 야근수당이 월급만큼 나오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월요일에 출근해서 금요일 저녁때까지 퇴근을 못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픔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실전을 통해 야생을 배우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동기들이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은 어떻게 되나요?
설계 프로젝트는 대상이 관공서 또는 기업이거나 계약 금액이 일정 금액 이상이면 수의 계약보다는 경쟁 입찰이 대부분입니다. 단, 특수한 조건일 경우 수의 계약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쟁 입찰
경쟁입찰의 경우 현장설명회 또는 공고를 한 후 자격 조건에 맞는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고 심사를 통해 업체를 선별한 후 당선업체에게 우선권을 부여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 현장설명회 또는 공고
- 프리젠테이션(1~4주후) 또는 성과물 제출
- 업체 선정
- 계약
수의 계약
수의 계약일 경우 별다른 형식은 없으며, 고객과 협의 하에 설계범위, 설계기간, 성과물, 설계비 등을 상담, 조율하여 결정합니다.
설계 진행은 어떻게 되나요?
기획설계, 기본설계 그리고 실시설계 단계마다 진행방법과 성과물이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설계를 한 후 공사를 진행하는 일반적인 경우 아래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 고객과의 첫 미팅에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 방향이 아닌 고객의 의견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정리합니다.
- 현장 점검 및 실측을 합니다. (1번과 병행 가능/현장에서 고객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디자인 미팅 (컨셉, 평면, 입면, 천정, 제작가구, 마감재/도면과 투시도 그리고 마감재를 확인합니다)
- 공사 시작 (현장 지원/공정이 진행되는 중간에 고객과 함께 확인합니다)
- 공사 완료 (디스플레이/가구와 조명 등 디스플레이도 세세하게 확인합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매력은?
불과 십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결과물인 디자인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거의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당시엔 공사를 맡기면 설계는 당연히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에 대한 가치는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으며, 그 역할은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업무 및 상업 공간에서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홈 인테리어 시장이 증가하고 있으며 개인의 스타일에 맞춰 공간을 꾸미는 수요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노후된 아파트나 주택을 개조하려는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노후주택 개선사업 및 재건축 등 여러 사업이 추진되면서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창의성과 기술력이 요구되는 직업으로,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입니다.
가장 기억나는 프로젝트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팬택”이라고 기억하시나요? 상암동에 팬택의 사옥이 지어지면서 경쟁입찰이 있었습니다. 저희 팀이 약2달 정도 매일 야근을 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특이하게 PT를 하고 당일 현장에서 바로 업체 선정 발표 하였는데 정말 쫄깃했습니다. 2005년 기준 수주액 40억이 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지난 2달간의 고생이 발표 순간에 다 풀렸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프로젝트는?
10여년전 평창동의 한 주택을 리노베이션 하게 되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써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주택공사입니다. 특히 평창동은 공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인허가 문제도 어렵고 주위의 민원도 만만치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증축이라 건축사가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 시부터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계속 문제가 발생되었습니다. 철거를 하던 업체가 돈을 받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대표가 현장소장을 믿지 못하고 하도급업체를 자기 업체로 계속 바꾸더군요. 결국 준공 일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6월30일에서 7월30일 1달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못 지켰습니다
다시 8월20일로 2차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8월 초 현장 소장이 도망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관리자로 현장에 상주했습니다. 현장은 마무리했지만 문제는 다음에 터졌습니다. 준공허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9월 중순이 되어서야 허가가 떨어졌고 이후 이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건축주는 화가 날 때로 났고 잔금을 차일 피일 미루기 시작했으며 해가 지나고 3월이 지나도록 공사대금 지급을 미루었습니다. 더불어 추가공사에 대한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상방간에 지저분한 법정소송이 시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소통과 공감 없이 돈만 보고 진행된 프로젝트, 어쩌면 예정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건축기능주의를 강조한 루이스 설리반이 말한 말 입니다. 이 말을 모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용했고 바우하우스의 기본으로 받들어져 왔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현실세계 즉 실물로 만지고 볼 수 있는 것들은 형태가 기능을 따릅니다. 공간을 다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기능을 무시해서 예쁘고 아름답게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에서 기능은 기본입니다.
저는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고객이 만들어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디자인을 더욱 담백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나는 애피소드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제게 “아저씨”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출근할 때 아이는 자고 있고, 새벽1~2시에 퇴근하면 자고 있고, 또 주말에도 바빠서 회사에 나가니 아빠 얼굴을 몇 달간 볼 수가 없어서 오랜만에 만나서 낯설어서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그당시 아내와 많이 싸웠습니다. “당신은 가족에게 하는 게 뭐 있냐?고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모두에게 서로 마음의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7년간 다른 일을 하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다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돌아왔습니다. 직업은 쉽게 바꿀 수가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학교 다닐 때 과제를 열심히 하면서 지냈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지내고 싶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친구를 사귈 것 같습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인맥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 그리고 소통과 배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큰 사회인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구가 자신의 아파트 인테리어에 대해 조언을 구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아파트 인테리어 과정을 철거부터 준공까지 매일 포스팅하면, 인테리어 DIY에 관심 있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준비해 보겠습니다.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 인테리어를 더 쉽고 친숙하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 글을 올려리겠습니다.
다음글 : About 디자인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