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업계의 그림자, 계약서 없는 거래의 위험성

계약서 없는 거래의 위험성

이번 글은 계약서 없는 거래의 위험성에 대해서 제가 겪은 사례를 예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계약서 없이 진행했던 그 프로젝트일 것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일의 시작은 오랜만에 연락이 온 대기업 친구의 소개였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팀 후배를 인테리어 건으로 소개해주었고, 우리는 전화로 먼저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후 사무실에서 만난 고객은 젊고 의욕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고,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곧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집안은 꽤 부유한 것 같았습니다. 경기도 인근에 경매로 나온 건물과 토지를 낙찰받았으며, 그곳에 수입차 정비센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경매에 가장 큰 자금이 소요되었고, 자동차 정비에 필요한 장비와 비품 구입에도 큰 비용이 들어간다고 말하며 인테리어에 큰 비용을 들이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열정과 노력의 시간

고객은 인테리어 공사 비용이 전체 자금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저희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엔 수입차 붐이 일었던 때라 큰 규모의 수입차 전문 정비센터를 처음 경험해보는 저희 회사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한다는 조건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차장님(제 친구) 오랜 친구라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이라서 소개시켜 달라고 했습니다.”라는 고객의 말에 저도 “한 번 같이 일 해 보시죠.”라고 답했습니다.

누군가는 한번쯤 의심을 해볼 수도 있었지만 저희 대표도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소개라는 말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은 진행되었습다. 저희한테만 일을 의뢰한다는 말과 지인의 추천으로 인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구두상의 약속만으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주, 우리는 현장에서 만나 건물을 둘러보며 디자인 방향과 기본적인 계획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도면이 없어서 현장 실측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도면 작업을 시작으로 설계를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미팅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고객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나 참고 자료를 보내주면서 피드백을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열심히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치열한 고민의 시간

디자인의 방향이 잡히고 나서는 견적 산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공사 예산은 한도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 범위 내에서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디자인과 마감재를 여러 번 검토하고 수정했으며, 협력 업체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하며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소개해준 친구에 대한 의리와, 입찰 없이 수의로 일을 맡긴 고객에 대한 보답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달여간의 고생 끝에 마침내 최종 설계 도서와 견적서를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고객의 태도 변화

고객은 검토 후 연락주겠다고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공사 진행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의 반응은 전혀 달라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3억 중반의 견적을 1억이나 낮춰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마감재를 변경하거나 일부 아이템을 삭제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우리와 공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계약서의 중요성

이미 도면과 견적서가 모두 제출된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계약서 없는 거래는 법적으로도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나랑 그렇게 안 친해.”라는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한동안 이 일을 잊으려 노력했지만, 약 1년 후 인터넷에서 우연히 해당 수입차 정비소를 검색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디자인한 3D 이미지와 거의 흡사하게 완공된 모습을 보며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계약서 없는 거래는 위험성이 많습니다. 두 여성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 Unsplash_Gabrielle Henderson

교훈을 되새기며

계약서 없는 거래의 아픈 경험은 인테리어 업계에서 자주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고객과 업체 모두 서로를 믿고 일을 시작하지만, 계약서 없이는 어느 쪽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이 나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약서만 작성했더라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원칙을 스스로 어겼기 때문에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쓰라린 경험을 통해 우리는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과 기본적인 비즈니스 원칙을 지키는 것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방심했던 한 순간의 작은 실수가 모두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항상 원칙을 지키며 일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계약서 없는 거래의 위험성에 대한 사례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분쟁을 막는 인테리어 표준계약서 작성에 관한 것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다음글 : 벽지 선택과 활용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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